[레몬트리] EBS <빠삐에 친구>의 원작자 밀라 보탕 2008.11.26
찢고 오리고, 종이 미술교육의 창시자

EBS <빠삐에 친구>의 원작자 밀라 보탕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인데 온통 종이다. 배경의 나무, 꽃은 물론 주인공 중 하나인 기린 얼굴부터 쁠, 얼룩 반점, 심지어 긴 목을 감싸고 있는 털까지도 종이로 표현됐다. 게다가 자세히 보면가위로 깨끗이 오려낸 종이가 있는가 하면 손으로 살살 찢어낸 종이도 눈에 띈다. 종이를 찢고 오리면 이런 느낌이었나 싶어 아련한 어릴 적 미술 시간이 떠오른다. 그리고 문득 손에 잡히는 아무 종이의 한 귀퉁이를 잡고 살살 찢어본다. 맘에 안 들면 바로 구겨서 휴지통으로?날리면 되니깐.

종이로 하는 가정식 미술 교육
종이처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미술 재료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까지 기자에게 종이는 그림을 그리는 도화지, 종이접기할 때 쓰는 색종이와 같은 것들이었다. 그래서 찢고 오려서 그림을 표현하는 종이 일러스트를 봤을 때 '앗!'하는 작은 충격이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왜 그녀는 하필 종이로 일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녀의 대답은 매우 쿨했다. '믈감은 지저분해지지만 종이는 그냥 하나로 구겨 휴지통에 던져버리면 정리 끝이잖아요.'
올해 77세. 할머니인 그녀가 첫 종이 일러스트를 시작한 것은, 이제는 다 자란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진학한 뒤 우연히 학교 미술 수업을 참관하게 됐는데 학교 미술이라는 것이 참 재미없었다.그래서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는 미술 수업을 시작했는데, 그 수업의 재료가 바로 종이였다. 이유는 아이들과 이리저리 널려놓고 놀이 수업을 할 때 다른 재료에 비해 치우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안전하기까지 했다. 종이는 아이와 엄마가 집에서 쉽게 미술교육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재료가 되는 셈이다. 그녀의 이런 가정식 미술교육은 30년전부터 책으로, 유아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로 활용되 현재 대중적인 프랑스 가정식 미술교육방법 중 하나가 됐다. 밀라 보탕은 현재 종이를 이용한 미술교육으로 프랑스의 국보급 그림 작가로 여겨지고 있다.

단순화와 관찰, 미술을 보는 눈 키우기
그녀가 종이를 선택한 또 한가지 이유는? '단순함의 힘'을 믿어서다. 종이로 사물이나 동물을 표현하는 것은 크게 보면 동그라미, 세모, 길쭉한 네모처럼 단순한 도형을 붙여 완성하는 과정이다. 소를 그린다고 할 때 몸이 되는 큰 네모와 얼굴이 되는 작은 네모 2가지를 붙여 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종이는 붓과 달라서 아이들이 표현할 대상의 가장 중요한 부분만 남겨 단순화된 상태가 작품 제작의 시발점이다. 그 뒤 실물과 비슷하게 조금씩 조금씩 살을 붙여나가면서 점점 모습을 구체화시키는데, 이처럼 살을 붙이는 과정이 관찰이다. '옆에서 본 소는 어떻게 보이더라?','땅에 웅크리고 앉아 있을 때 다리는 어떻게 하고 있었지?' 처름 내가 그리고 싶은 대상을 관찰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종이를 이런 모양으로 찢어보기도 하고, 길게 오려낸 다리는 반 잘라서 구부린 다리로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뛰어가는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반으로 자른 다리를 움직이면서 뛰는 모습을 연출해 보기도 한다. 관찰한 것을 종이로 보여주는 것은 물론 동작 표현, 스토리텔링까지도 가능하다.이런 바탕이 생기면 미술 관람 태도가 달라진다고 그녀는 말한다. 유명 화가의 작품을 보면서 아이들은 '이 화가도 나처럼 노란색을 썼는데 이 사람은 이렇게 썼네' 라면서 '나처럼', ;나와 똑같이'라는 생각으로 형태와 색을 보게 된다. 곧 형태를 단순하게 보고, 분석하고, 관찰한다. 어떤 작품이라도 형태를 단순화해서 쉽게 관찰해나가면 호기심도 생기고, 궁금증도 생기고, 미술이 재미있어진다. 그래야 아이 나름의 미술을 보는 진짜 힘이 길러진다. 밀라 보탕의 30년에 걸친종이 미술교육의 인생 미션, 그것은 종이로 아이에게 나만의 미술을 바라보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인터뷰를 마치고 유치원에서 아이들과 종이 일러스트를 그리는 시간을 함께했다.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춰 바닥에 앉아 종이를 함께 찢고 오리며 시간을 보냈다. 이날 아이들은 애니메이션 <빠삐에 친구>의 새콤 리코처럼 토끼를 종이로 표현했는데, 20여 명의 아이들이 표현한 저마다 다른 토끼를 보면서, 그녀가 말한 '아이마다 다른 미술을 보는 힘'이란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있었다. 저마다의 호기심, 시각, 관찰을 통해 같은 사물이 달리 표현되는 개성과 상상의 세계였다. 그녀도 아이들의 작품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훌륭하다'라는 말을 연발했다. 처음 그녀가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종이 미술교육을 하면서 아이들의 상상력과 관찰력에 놀랐던 그 순간처럼.


조희재 기자 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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