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 내일] 지금 아이들은 종이 찢기 열풍~ 2009.01.19
미술 교육 애니메이션 <빠삐에 친구> 만든 양지혜 대표




요즘 EBS의 한 애니메이션이 엄마들 사이에 진득한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 EBS와 프랑스 공영방송 채널(France5)을 통해 동시 방영 중인 <빠삐에 친구>다. 10분짜리 간결한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흥미를 끄는 동물 이야기에 유익한 종이 공작 시간이 덤으로 붙는다. 보는 것만으로도 상상력을 자극해 아이의 창의력과 감성지수가 쑥쑥 올라가는 듯하다. 동물 원화를 그린 작가의 나라 프랑스는 어릴 적부터 가정에서 부모가 리드하는 미술 교육이 활성화되었다는데…. 미술 교육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를 국내 제작자가 들려줬다.


손끝 감각 발달하고 말솜씨도 늘고

세 살, 여섯 살 자매를 키우는 영아 엄마는 하루 중 오전 8시부터 9시가 가장 분주하다. 한데 요즘은 아이들과 집중해 보는 TV 프로그램으로 더 바빠졌다. 인근 구립도서관 독서클럽 엄마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서 몇 달 전부터 꼭 빠뜨리지 않고 시청한단다. 방송이 끝나면 첫째 영아는 곧 유치원에 가지만 둘째 은교는 손을 잡아끈다. 방금 TV에서 본 대로 색종이를 준비해 공작 실습을 하자는 주문이다.
“준비물이 간단해서 좋아요. 종이 한 가지만으로 충분히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요. TV를 보면서 해도 되고, 보고 나서 아이가 원할 때 언제라도 종이만 대령하면 된답니다.”
손으로 찢어 붙이는 표현이 아이의 손끝 감각을 자극해 두뇌 발달에 도움을 주는 것 같다는 설명. 엄마가 옆에 있으니까 더욱 신이 나서 말을 거는 아이는 자연스레 자신만의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어릴 적 종이인형을 오리며 놀던 때 그랬듯 스스로 상상의 날개를 펼쳐나가는 모습을 보는 엄마는 대견하기만 하다.


프랑스에서 발굴한 놀라운 미술 교육

종이 찢기 놀이를 통해 아이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빠삐에 친구>. 빠삐에(papier)는 프랑스어로 ‘종이’라는 뜻이다. 아바(기린), 리코(토끼), 테오(곰) 등 세 마리 동물 캐릭터가 등장한다. 색종이를 손으로 찢은 자국이 그대로 남은 게 꾸밈없는 모양새다. 이 독특한 동물 캐릭터들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2000년인가, 유럽 출장 중에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을 방문했어요. 그곳 미술관 어린이 코너에 들렀다가 밀라 보탕 여사의 그림책을 만났죠. 깜짝 놀랐어요. 우리가 익히 아는 화가들의 작품을 간결하게 단순화해서 쉽게 설명해주는 책이거든요.”
<빠삐에 친구> 국내 제작업체 ‘캐릭터플랜’ 대표 양지혜 씨(42)의 소개다. 라는 그림책에는 색깔에 대해 섬세하고도 자상한 코멘트가 담겨 있었다. 세계 유명 화가들의 원화를 보여주고 이를 아이들 시선에 맞게 재구성한 것으로, 작품을 단순화해 아이들이 직접 그려볼 수 있게 유도하는 능숙한 솜씨에 그는 혀를 내둘렀단다.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박물관에서도 같은 책을 발견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작가는 스페인어에도 능통한 이라고.
당시 막연히 ‘이 작가와 작업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본래 양씨는 미술을 전공한 뒤 캐릭터 문구업체 바른손에서 일했다. 1980~1990년대를 풍미한 떠버기, 금다래 신머루, 리틀토미 등이 그의 손을 거친 캐릭터다. 이후 캐릭터플랜을 창업해 극장용 장편 <망치>와 한일 합작 애니메이션 <신 암행어사>를 만들었고, 성교육 애니메이션 <아이들이 사는 성>은 2006년 안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교육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경력을 짚어보니 미술관에서 발견한 안목이 단순한 취향만은 아닌 셈이다.
그렇게 우연히 작가를 발굴하고 남몰래 마음에 품은 염원은 차츰 성과를 드러냈다. 지난 2004년 프랑스 칸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규모 TV 프로그램 견본시(MIPCOM)에서 EBS가 보탕 여사에게 아트워크 제작을 제안한 것. 양국 방송사도 참여하고 프랑스 측 제작사 ‘프랑스애니메이션’과 국내 캐릭터플랜의 공동제작 형태로 획기적인 작품이 탄생한다.
오랜 숙원을 이룬 듯 양씨는 벅찬 가슴으로 기획 단계부터 보탕 여사에게 원화 일러스트를 부탁했다. 프랑스 센 강변 노트르담사원 인근에서 처음 만난 여사는 전형적인 파리지앵으로, 세련된 패션 감각에 ‘공작처럼 우아한 품새’가 매력적인 사람이다. 어린이 미술 교육서를 20여 권이나 냈는가 하면, 1970년대부터 자국 TV에 비슷한 컨셉트의 프로그램 제작을 도왔다.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미술 교육에 의욕이 대단한 이다.




종이 찢는 가운데 상상력은 무한대

<빠삐에 친구>는 현재 여섯 달째 두 나라에서 동시 방영 중이다. 프랑스 프로그램명은 <아바 리코 테오>. 지난 가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2008 대한민국 만화애니메이션캐릭터 대상’에서 애니메이션 부문 대상의 영예도 안았다.
예쁜 배경에 캐릭터의 부드러운 움직임, 친근한 ‘빠삐에 송’ 등 아이와 엄마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중 종이의 질감과 감성이 잘 살아난 표현이 눈길을 끈다. 바로 디지털 컷아웃(digital cut-out) 기법인데, 3D 디지털의 차갑고 인공적인 느낌 대신 따뜻한 아날로그 감성을 전한다.
기린 숙녀 아바, 귀여운 토끼 리코, 잠꾸러기 곰 테오 세 주인공이 신기한 세상을 경험하면서 친구들을 돕는 내용으로 구성된 전편이 끝나면 체험 코너 ‘종이 놀이 시간’이 이어진다. 종이를 찢을 때, 오릴 때, 구길 때 등 모양이나 질감을 생생하게 재현해주는 한편, 그날 에피소드에 등장한 배경이나 캐릭터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주는 것이 포인트. 이때 캐릭터 창안자 보탕 여사의 어린이 미술 교육론이 개입한다.
“종이야말로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도구예요. 종이를 찢어서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버리고 다시 하면 되지만, 종이에 그림을 그리다 잘 안 되면 실패한 것 때문에 실망하죠. 종이 찢기를 통해 형태를 바라보는 눈이 생기고, 다른 화가의 그림이나 풍경 같은 것을 단순화해서 보는 눈을 가질 수 있어요. 또 자기가 표현할 물건에 어떤 종이를 쓸지 고르면서 사물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기고 표현력이 길러집니다.”
지난달 보탕 여사는 잠시 한국을 방문해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진행 중인 창의력 교실에서 강연과 체험 학습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요즘은 시청자들 사이에 작은 고민이 생겼단다. 아이들이 보이는 종이마다 찢고, 가위가 보이면 일단 오리고 보는 버릇이 생긴 것. “우리 집은 옷도 같이 오렸답니다. 다행히 막 입는 옷이었지만 만들 때 어찌나 흥분을 하던지~. 하하.”
EBS 웹사이트(home.ebs.co.kr/papier)와 네이버 카페(cafe.naver.com/papierart)는 마니아 가족들의 기발한 솜씨 자랑과 유쾌한 체험 후기로 웃음이 가득하다.




취재|조미나(자유기고가) 사진 | 백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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